[최용재기자] 한국 축구의 '심장'이었던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했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100번째 경기를 뛴 후 박지성은 영광을 함께 했던 대표팀과 이별을 고했다. 아직은 더 뛸 수 있는 나이임에도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자 주변의 만류와 팬들의 아쉬움 속에 대표팀을 떠난 박지성. '국가대표' 박지성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조용히 시작됐던 박지성의 대표선수 생활
지난 2000년 4월5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아시안컵 1차 예선 라오스와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A매치에 나섰다. 당시만 하더라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 작은 체구의 무명 선수였을 뿐이었다.
라오스전에 선발 출장한 박지성은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태극마크를 단 스스로의 가치를 드높였다. 한국의 9-0 대승.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 각각 3골을 기록한 김은중과 설기현에 밀려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비껴 서 있었다. 하지만 박지성은 첫 출전한 A매치에서 최선을 다했고 팀 승리에 한 몫을 담당했다. 박지성의 첫 번째 감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0년 6월7일. 박지성은 A매치 첫 골을 쏘아 올렸다.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LG컵 마케도니아와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후반 18분 결승골을 뽑아내며 한국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박지성의 존재감, 박지성의 영향력이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에서 조금씩 빛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차츰차츰 대표팀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던 박지성에게 운명적인 2002 한일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의 박지성을 만들어준,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준 2002 월드컵이 박지성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2002 월드컵 앞두고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떠오르다
2002년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한국대표팀이 가진 친선경기. 한국의 상대는 세계적 강호들이었다. 한국은 강호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월드컵에서의 가능성과 경쟁력을 시험하려 했다. 세계적 강호들과의 친선경기에서 한국은 놀라운 모습을 보이며 2002 월드컵 신화의 예고편을 멋지게 상영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다.
2002년 5월21일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난 상대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 당시 잉글랜드에는 스콜스, 퍼디낸드, 오언 등 세계적 스타들이 포진해 있었다. 한국이 상대하기에는 벅찬 상대임은 분명했다. 한국은 전반 26분 오언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가고 있었다. 세계적 강호의 벽을 실감해야만 했다. 그 때 박지성이 등장했다.

박지성은 세계적 강호와 만나도 한국축구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줬다. 박지성은 후반 6분 헤딩슈팅으로 동점골을 뽑아냈고 결국 한국은 잉글랜드와 1-1로 비겼다. 박지성의 활약상. 한국 축구팬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다.
박지성의 활약은 멈추지 않았다. 이어 벌어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 1998년 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는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다. 지단, 앙리, 트라제게, 튀랑 등 세계 축구를 호령한 스타군단 그 자체였다. 프랑스와의 경기가 박지성의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지성은 세계 최강 프랑스를 상대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0-1로 뒤지고 있던 전반 26분. 김남일이 문전으로 롱패스를 시도했고 박지성이 폭풍처럼 달려나가며 볼을 잡아냈다. 그리고 프랑스 수비수 2명을 가뿐히 따돌리며 강력한 왼발 슈팅을 때렸고 공은 골대 오른쪽 구석을 시원하게 갈랐다. 당시 세계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꼽혔던 프랑스의 바르테즈도 어쩔 수 없었던 완벽한 골이었다.
이 골이 지금의 박지성을 만들었다. 박지성 신화의 시작이었다. 이 골로 인해 박지성은 단번에 대표팀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박지성의 진가를 알린 최고의 골이었다. 한국은 2-3으로 프랑스에 아쉽게 패배했지만 월드컵 본선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박지성은 잉글랜드와 프랑스전에서 잇따라 골을 넣으며 한국 축구에 희망을 안겨줬다.
오~ 코리아, 와~ 박지성…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되다
평가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한국은 자신감을 가지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국은 조예선 1차전에서 폴란드에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2차전 미국과는 아쉬운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제 예선 마지막 3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이 갈리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2002년 6월14일 열린 포르투갈과의 조별예선 3차전. 월드컵 최고의 골. 대한민국을 붉은 함성으로 들끓게 했던 환상적인 골. 포르투갈을 침몰시키고 한국을 16강으로 이끈 역사적인 골. 박지성의 발끝에서 나왔다. 후반 25분 이영표의 패스를 받은 박지성은 가슴 트래핑으로 수비수를 제친 후 왼발 논스톱 슈팅을 때렸다. 공은 시원하게 골망을 흔들었고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펄쩍 뛰며 가슴에 안기는 인상 깊은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박지성의 이 환상적인 골도 많은 축구팬들이 기억하고 있지만 박지성의 이 감동적인 골 세리머니도 한국 축구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이 됐다. 그만큼 강렬했던 골과 세리머니였다.
이후 한국은 16강전에서 이탈리아, 8강전에서 스페인 등 유럽 최고 강호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4강 신화를 일궈냈다. 2002년 월드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을 환희와 감동에 빠뜨렸던 최고의 작품이었다. 박지성은 그 신화의 중심에 있었고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박지성은 한국 대표팀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한국 대표팀은 이제 박지성을 중심으로 흘러가야만 했다.
유럽 무대를 호령하며 국가대표의 ‘상징’이 되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상징’이 돼버린 박지성. 네덜란드의 PSV 아인트호벤에 입단하며 유럽 무대에 진출한 박지성. 그리고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세계적 스타가 된 박지성.
이런 유럽에서의 경험이 박지성의 대표팀 내 영향력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유럽파 박지성의 경쟁력과 진가는 고스란히 대표팀 속으로 스며들었다.
박지성이 가는 길에는 항상 영광과 환희가 따라왔다.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상대는 세계 최강 프랑스였다. 당시 모든 축구팬들이 한국의 대패를 예상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박지성의 발끝에 의해 한껏 자존심을 구기고 말았다. 한국은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자긍심을 찾을 수 있었다. 지단과 앙리가 포진한 프랑스를 맞아 0-1로 끌려가던 한국은 박지성의 극적인 골로 동점을 이뤘다. 박지성의 일격으로 한국은 프랑스와 1-1 무승부를 거둘 수 있었다.
이후에도 박지성은 수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2차례 대결에서 한국의 자존심을 살려낸 두 번의 동점골. 2010년 5월24일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묘한 표정의 세리머니를 펼치며 일본을 혼란으로 빠뜨렸던 선제 결승골. 남아공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터뜨린 환상적인 골과 가슴 뭉클한 봉산탈춤 퍼포먼스.
박지성은 그렇게 최고의 순간들을 만들어내며 당당하게 걸어왔다. 한국 축구의 영광 속에는 항상 박지성이 있었다.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부진과 슬럼프도 없이 꾸준히 걸어온 길이다.

센추리 클럽 가입, 그리고 아쉬운 은퇴
3번의 월드컵과 3번의 아시안컵을 경험한 박지성. 그가 걸어온 길이 어느새 100번째 이정표에 이르렀다. 2011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 일본과의 4강전에 나선 박지성은 총 A매치 출전 횟수가 100경기가 됐다. 선수 개인에게 최고 영광이라 할 수 있는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그리고 100번째 감동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박지성이 걸어온 100번째 길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고맙다, 그리고 안타깝다. 수많은 추억과 감동을 선사해줘 고맙고 조국을 위해 매번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에 안타깝다. 한국 축구의 위상을 한층 높여줘 감사하고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한국 대표팀을 책임지려 하는 모습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축구팬들도 고마운 마음을 간직한 채 박지성을 아름답게 보내주기로 했다.
아시안컵이 끝난 후 박지성은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박지성은 “지난 11년 동안 대표팀에 뛰어서 너무나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나에게 행복한 일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대표팀 유니폼을 입어 영광이었다. 아직 이른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고민 끝에 은퇴를 할 것이라 결정했다. 내 결정이 나를 위해서도 또 대표팀을 위해서도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은퇴를 공식화했다. 이어 박지성은 “가장 기뻤던 순간은 대표팀에 처음 발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가장 행복했을 때는 2002년 월드컵이었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이번 아시안컵 3위를 한 것”이라며 지난 11년간 태극마크에 얽힌 추억을 되돌아 봤다.
대표 은퇴는 했지만 ‘박지성표 감동’은 계속된다
박지성은 국가대표에서는 은퇴했지만 지금껏 받아온 사랑에 보답할 것이라 약속했다. 박지성은 “한국 축구에서 받았던 사랑, 대표팀을 통해 얻었던 많은 사랑을 대표팀 옷을 입고 뛰는 동안 다 보답하지 못했다. 대표팀 은퇴는 하지만 앞으로 한국 축구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며 한국 축구에 대한 사랑은 놓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박지성의 약속은 곧 현실화됐다. 박지성은 지난 2월 7일 사회공헌재단인 제이에스 파운데이션(JS FOUNDATION)을 설립했다. JS는 지성의 영문 이니셜이다. 박지성 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비영리 재단으로 한국 축구의 세계화와 축구를 통한 행복 나눔을 비전으로 삼아 축구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자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실천할 계획이다.
출범 후 첫 사업으로 오는 6월 15일, 베트남에서 박지성 및 국내외 유명 축구 선수들이 참가하는 자선 경기 ‘아시안 드림컵(Asian Dream Cup)’을 개최한다. 또한 박지성 재단은 국내 불우한 환경의 유소년 및 재능 있는 청소년 축구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고 축구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에 힘을 쏟기로 했다. 페어플레이 정신과 희망을 전파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자선기금 모금 사업도 전개할 계획이다.
박지성은 100번의 A매치에 나서며 100번의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은퇴를 한 후에도 감동을 주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박지성은 대표팀 옷을 벗은 후에도 천 번, 만 번의 또 다른 감동을 준비하고 있다.
/최용재기자 [email protected] 사진=박영태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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