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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인물] 촛불 국민, 2016년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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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선정, 정치권이 떨어뜨린 국격…국민이 세웠다

아이뉴스24는 2016년을 정리하며 올해의 인물로 촛불 국민을 선정했다. 올 한 해는 수출 감소와 내수 침체, 조선업계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 실업 등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실험 발사 등으로 인한 안보 위기가 우리 사회를 짓눌렀다. 특히 백미는 정치적 불안정성이었다. 비선실세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를 장악해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마음대로 수정하고, 대통령의 패션과 인사 심지어 안보 문제까지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최순실 사태로 우리 국격은 크게 훼손됐다. 연일 외신들이 이를 대서특필했고, 국민들은 '국민 된 것이 부끄럽다'고 할 정도로 분노했다. 훼손된 국격을 다시 높인 것은 다름 아닌 국민이었다. 국민들은 두 달여에 걸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백만 명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으면서도 단 한 건의 폭력 사태도 빚지 않았다. 매서운 추위도, 주말을 반납하는 고통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장에 모인 촛불 국민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87년 6월 혁명 이후 또 한 번의 변화를 맞을 수 있게 됐다. 과거의 혁명을 통해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온 것처럼 이를 통해 헬조선으로 대표될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진전을 맞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편집자]

[채송무기자] 2016년, 우리 사회에서 타오른 촛불로 국민주권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것도 과거 시민혁명에서 김대중·김영삼 등 야권 정치인과 이른바 운동권이라고 할 수 있는 재야·대학생 등의 영향력이 컸다면 이번 시민혁명은 광장에서 시민들이 정치권을 시종일관 추동했다.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마음대로 고치고, 인사와 국정을 농단했다는 소식이 국민들은 경악했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설립에 개입했고, 기업 총수들을 만나 기금을 출연하게 했다. 국가 주요 정책이 비선실세인 최순실의 사익을 챙기는 도구로 쓰였다.

촛불의 최초 발화인 10월 말까지만 해도 서울시청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숫자는 3만명 정도였다. 그러나 반성하지 않고 꼼수책들을 내놓는 권력 앞에 시민들의 수는 빠르게 늘었다. 2차 촛불집회에는 약 10배인 30만 명의 시민들이 광화문을 채웠다. 3차 촛불집회는 더욱 늘었다.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100만 여명이 모여 역대 최대 집회 기록을 썼다.

시간이 지나면 촛불은 꺼질 것이라는 일부 정치권들의 예측과 달리 촛불은 오히려 확산됐다. 11월 19일 4차 촛불집회에 60만 명이 모여 숨고르기를 한 촛불은 서울 일대에 첫 눈이 내리고 차가운 칼 바람이 분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에는 서울 150만 명, 지방 40만 명 전국적으로 190만 명이 참여하는 역대 최대 규모 집회 기록을 갈아치웠다.

추위와 찬 날씨가 촛불 동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예측을 보기좋게 반박한 것으로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는 서울 170만을 비롯해 부산 20만, 광주 10만, 대전 5만, 전주 2만 창원 1만 명의 촛불을 들었으면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도 3만5천명이 탄핵을 외쳤다. 전국적으로 232만 명이 전국적으로 촛불을 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번의 대국민 사과와 두 번의 대국민 담화문, 국회에 총리 임명 권한을 이양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마지막에는 대통령 임기 단축을 국회에 맡길 수 있음을 이야기했지만 촛불 민심은 굳건했다.

야권의 공조에 균열을 보이고, 탄핵의 키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비박계가 대통령의 임기 단축 카드에 흔들렸지만, 촛불은 오히려 더 강고하게 정치권을 압박했다.

결국 박 대통령의 탄핵안은 박 대통령의 탄핵안은 9일 본회의에서 총 투표수 299표 중 가결 234표, 부결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가결됐다. 가결 표수인 200표를 34표 넘은 압도적인 가결에 국회를 지키고 있던 촛불 시민들은 환호했다.

광장에서 시작한 민심이 국가 권력을 무너뜨린 것으로 이는 4.19 혁명, 6.10 민주주의 항쟁을 잇는 한국 근현대사 민주주의 혁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2년, 2008년 촛불집회와 무엇이 달랐나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 저항의 문화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효순·미선이 사건 때부터였다. 월드컵의 열기가 우리 사회를 지나간 자리에 두 여중생을 미군 장갑차가 압사시켰음에도 아무런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한미 행정협정(SOFA)에 항의하는 목소리들이 커졌다.

의정부의 시민단체들과 효순이, 미선이의 친구들에 의해 시작된 집회는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매개로 광화문 일대를 가득 매운 10만 인파의 시위로 커졌다. 시민들은 당시에도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미 대사관 앞까지 진출해 불합리한 SOFA 규정에 항의했다.

그 후부터 14년 동안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저항의 방식이 됐다. 촛불이 가장 거세게 타올랐던 것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였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투쟁 당시에도 시민들은 거세게 분노했다.

당시 아이들의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인 '유모차 부대'가 집회장에 나와 관심을 받았다. 중고생과 일반 시민들도 참석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해 강한 탄압과 불통으로 대응했다.

최초 촛불집회는 일반 시민들이 광화문 거리에 모여 같이 자신들의 의견을 이야기했지만, 인디밴드의 공연, 시민들의 소규모 토론 등도 이뤄지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분위기는 경찰의 개입으로 바뀌었다.

경찰은 아이들의 유모차를 이끌고 온 유모차 부대에 '일반교통방해죄'를 들어 무차별적으로 연행했다. 광화문 일대는 이른바 '명박산성'이라 불리는 컨테이너가 놓여졌고, 청와대 인근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빈틈없이 쳐진 경찰의 차벽에 귀가마저 힘들어졌다.

청와대 인근으로 행진하는 시민들에는 경찰의 연행과 물대포 등 제압이 가해졌다. 일반 시민에게 전의경이 잔혹한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연이어 공개되면서 비판 여론이 조성되기도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공개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검찰의 촛불시위 수사 백서에 따르면 1천476명 입건, 구속 기소 43명, 불구속 기소 165명, 약식기소 1천50명, 기소 총 1천258명이 나올 정도로 경찰의 대응은 강경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공권력은 차량 자원봉사에 나섰던 '촛불자동차연합' 소속 시민들의 운전 면허를 취소시켰고, 시민들에게 수백만 원에 달하는 벌금형에 처하는 등 생계를 위협했다. 공공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한 이같은 공권력의 탄압 속에 일반 시민들과 촛불집회는 점차 유리됐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인 정권 초였다는 점도 이같은 강경대응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6년 촛불 때는 달랐다. 시민들은 수백만 명이 모였으면서도 철저한 비폭력을 유지했다. 일부 시민들이 경찰에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이들을 자제시키며 공권력 투입의 빌미를 주지 않았다. 스스로 쓰레기봉투를 가져다 집회 장소를 청소하고, 경찰 차벽에 붙인 꽃 스티커를 스스로 떼는 성숙한 시민 의식도 보였다.

경찰도 지나친 대응을 자제했다. 정권 말이기도 했지만, 역대 최대 규모를 경신한 촛불집회의 민심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경찰이 자극하지 않으니 폭력사태는 없었다. 지난 10월 말부터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때까지 2달여 기간 동안 수백만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서 자신들의 의견을 표했지만, 충돌이나 폭력은 없었다.

경찰이 그동안 물대포 사용이나 지나친 대응을 하면서 내세운 공공시설 보호나 질서 유지 등이 무색해진 결과로 이같은 결과는 향후 시민 측의 시위 방식이나 경찰의 대응 방식 모두를 변화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진화하는 촛불, 직접 민주주의 높아진다

혁명의 과실을 군사독재 정권에게 빼앗겼던 4.19 혁명이나 87년 6월 항쟁, 정권의 강력한 탄압으로 일반 시민들과 유리됐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와는 2016년 촛불은 특별한 지도부가 없었으면서도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 성과를 거뒀다.

국민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 권력을 무너뜨린 이같은 승리의 경험은 향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우선 우리 사회에 직접 민주주의의 경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는 일관되게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동안 헬조선, 흙수저로 대변되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였다. 촛불집회에서는 검찰 개혁, 정경유착의 문제, 언론 개혁 등의 문제 등이 제기됐고, 세월호의 즉각적인 인양 역시 주요하게 거론됐다.

이미 내년 대선에서는 촛불민심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은 개헌이나 개혁적 법제화를 통해 촛불민심이 요구한 민심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인 역시 그동안은 국민의 앞에서 선도하는 형식의 지도자가 선호됐다면 향후에는 국민의 목소리를 잘 대변하는 지도자가 각광받고 있다. 탄핵정국 이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차기 주자 선두권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위협할 정도로 지지율 성장을 이룬 것이 한 예다.

이 시장은 탄핵 정국에서 가장 촛불민심을 잘 파악하고 이를 대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의 지도자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인들을 추동하며 결단을 통해 미래상을 제시하는 정치인이었다면 이제 시민에게서 형성된 의제들을 대변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정치인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촛불혁명은 아직도 진행 중…우리 사회의 변화 추동

2016년 촛불혁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된 후에도 촛불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12월 10일 7차 촛불집회 때는 전국에서 104만 명의 촛불시민이 탄핵 가결을 축하했고, 17일 8차 집회에서는 6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했다. 24일 성탄 전야에 치러진 9차 집회에서도 전국에서 70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올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도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다. 뿐만 아니라 2017년에도 촛불집회는 이어질 예정이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최종 인용될 때까지 촛불은 계속 타오를 것으로 보인다.

권력이 무너뜨린 국격을 시민들이 직접 다시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촛불이 어디까지 진화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2016년 촛불이 기존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군사독재 시대의 적폐 청산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6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촛불 파도타기를 하고 있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서울 170만 명, 전국 232만 명(경찰 추산 33만 명)의 시민이 모여 헌정 사상 최대 인파가 모였다. 이는 지난달 26일 5차 촛불집회보다 40만 명이 많은 수치이다.

/채송무기자 [email protected] 사진 아이뉴스24 사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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