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화기자] 주목할만한 신인배우가 등장했다.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로 등장해 시한부의 삶을 고통스럽게 살다 아깝게 져버리는 박희정(26)의 연기는 오랜 잔상을 남긴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씨의 실화를 그린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박희정은 주인공으로 당당히 이름을 걸었다. 대학 선배의 권유로 본 오디션을 통해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그는 실제 황유미씨와 닮은 외모로도 눈길을 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입사한 반도체 공장에서 병을 얻고 스물한살의 꽃다운 나이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이야기는 박희정을 통해 스크린에 그려진다. 현실과 타협하려는 부모에게 끝까지 싸워줄 것을 당부하며 영화 중반부에 죽음으로 퇴장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박희정이 연기한 '윤미'의 그림자에 기대 있다.
돈과 권력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아버지의 투쟁의 근원은 죽어가던 딸과 한 약속 때문이기에 스크린에서는 사라졌지만 윤미는 영화를 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故 황유미씨의 이름에서 따온 '윤미' 캐릭터를 연기하며 박희정은 "내가 정말 고인에게 폐가 되지 않게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계속 던졌다"라고 말했다. 꾸미지 않은 자연스럽고 평범한 느낌이 좋아 캐스팅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박희정은 옆집 처녀처럼 친근하고 순수한 인상을 가졌다.
"뉴스에서 본 적은 있지만 이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바는 없었어요. 주의깊게 본 적도 없었지만 유미씨의 아버지를 만나보니 '내 딸과 닮았다, 목소리도 말투도, 얼굴도'라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너를 통해 유미가 보일 수 있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들으니 책임감이 더 무거웠죠. 고인에게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 뿐이었어요."
실존 인물을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표현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다는 박희정은 영화에서 실제로 삭발을 감행하며 연기혼을 불살랐다.
"유미씨가 투병 과정에서 가장 힘들어했던 것이 삭발이었다고 들었어요, 머리를 깎으며 정말 많이 울었다고. 처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부터 각오한 일이기 때문에 막상 삭발 하는건 힘들지 않았어요. 영화 촬영하는 동안 4번 정도 삭발을 했는데, 머리카락이 없으니 체온 조절이 안되서 자주 아팠던 것 같아요(웃음). 삭발하고 고향에 내려간 적이 있는데, 그때도 좀 앓았거든요. 어머니가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우시더라고요. 처음에는 '군대가냐'며 놀리며 웃으시더니, 앓아 누운 모습이 안스러웠나봐요."
삭발보다는 그 모습으로 일상생활을 할때 사람들의 시선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박희정은 털어 놨다.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데, 길을 가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시선이 많이 의식됐어요. 스트레스였죠. 그 시선이 상처가 됐어요. 그러면서 난 연기 때문에 잠깐 이런거지만 진짜 아픈 사람은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나는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거대 기업을 소재로 한 이번 작품에 출연하며 걱정되는 것은 없는지 묻자 박희정은 "두레 참여자가 '우리가 지켜주겠다'라는 트위터 글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고 참 행복했다"고 당차게 말했다.
"돈이 무섭다라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해요. 개봉할 수 있을까, 극장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이 들었고요. 하지만 이렇게 개봉도 하고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많으니 걱정은 없어요."
영화를 통해 그동안 무지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는 박희정은 "이런 사람이 있고, 이런 일들이 있었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관심을 조심씩 갖는다면 조금이라도 다른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된다"고 속깊게 말했다.
황상기씨와 친분이 생기면서 남이 아닌 내 이웃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꼭 그 기업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들은 산업 현장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연기 이외의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박희정은 느리더라도 천천히 신뢰가는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본 관객이라면 배우 박희정이 걷게 될 앞으로의 행보를 관싶 깊게 지켜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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